12월 8일 일요일, 세계 인권의 날을 맞이하여 80만 명의 홍콩 시민이 거리로 나왔다. 아직 수용되지 않은 5대 요구사항을 촉구하는 의미가 포함된 플랜카드와 다섯 손가락을 펼치며 걷는 시위대를 쉽게 볼 수 있었다. 이번 행진은 경찰과 시위대의 마찰 없이 평화롭게 진행 되었다.
지난 한 달간 경찰과 마찰이 있었던 대부분의 시위 장소가 홍콩 중문대, 홍콩대 등 대학교임을 보면 알 수 있듯 시위대는 대부분 젊은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은 다른 국가의 과거 시위 사례와 홍콩 상황을 비교하며 특정 부분을 모방하거나, 비슷한 방식을 활용하며 홍콩 시위를 더욱 올바르고 평화로운 방식으로 진행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2014년 홍콩 민주화 운동 때와 확연히 달라진 점은 젊은층 사이에 다양하게 활성화된 온라인 플랫폼이다.
지난 노란 우산 혁명을 주도했던 젊은 시위대는 2014년 민주화 운동 방식의 문제점 두 가지를 지적했다. 첫 번째는 공통된 소식 전달 매체 (Integrated platform)가 없이 분산되어 진행된 점, 두 번째는 당시 시위를 계획하던 소수의 리더에 의해 시위가 진행되고, 많은 이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이런 문제인식을 바탕으로 올해 홍콩인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공유하고, 정치 또는 시위와 관련된 올바른 정보가 전달 될 수 있도록 와츠앱, 텔레그램, 페이스북 그룹, 트위터 등 글로벌 플랫폼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번 홍콩 시위에 가장 활발히 사용된 플랫폼은 다름 아닌 LIHKG 이라 불리는 로컬 플랫폼이다.
LIHKG는 홍콩 현지 온라인 포럼 사이트이며, 스레드 (thread) 게시판 형식으로 되어있다. 2016년까지만 해도 HKG+라는 현지 플랫폼이 홍콩 내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또 다른 현지 플랫폼인 HKGolden과 연계되어 운영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HKGolden과 마찰이 생겨 HKG+의 운영이 중단된 후, HKG+ 창립 구성원들은 이를 대신하기 위한 새로운 플랫폼으로 LIHKG를 만들었고, 홍콩 현지인들 사이에서 정치 관련 콘텐츠를 공유하는 데 활발히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HKGolden에는 정치 관련 콘텐츠 공유가 제한적이고, 이전 시위를 계획하던 한 사용자의 IP주소를 당국에 전달할 뻔한 위험한 사례가 발생하며 홍콩 내 LIHKG의 사용자 수는 급격히 증가하였다.
LIHKG는 미국 소셜 미디어 커뮤니티 사이트인 레딧(Reddit)과 비교되며, 홍콩판 레딧으로 불린다. 국내 플랫폼 중에선 디시인사이드와 비슷한 형식으로 볼 수 있으며, 정치 뿐만 아니라 음식, 테크, 연예계 등 다양한 주제별로 게시판이 나누어져 있고, 주제별로 다양한 글을 투고하고 댓글을 남길 수 있다.
현재 홍콩 레딧의 서브레딧인 /hongkong에는 90,000명의 구독자가 있으며 대부분 홍콩 내외 거주 외국인들이 홍콩 시위와 관련하여 토론을 나누는 반면, LIHKG의 사용자 대부분이 홍콩인들이며, 광동어 (중국어 번체자)로 소통이 이루어진다.
LIHKG가 철저히 익명제로 운영되는 점, 자유롭게 정치 관련 콘텐츠가 공유가 허용 되는 점, 무엇보다 가장 단시간 내에 많은 시위 참여자를 모을 수 있는 점을 고려하여, 홍콩인들은 LIHKG를 통해 시위 계획을 세우고, 레딧과 비슷한 형식으로 올라온 게시글에 추천과 비추천 (Vote up & down)을 통해 지지를 얻는 방식으로 시위를 집행한다. 시위 계획 게시글이 올라오면, 사용자들은 추천을 눌러 해당 게시글이 플랫폼 최상단에 올라갈 수 있도록 한다.
예를 들어, 한 네티즌이 홍콩 공항을 시위장소로 지정하고 이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게시물을 올리자, 많은 이들은 댓글을 통해 이에 대한 문제점과 실행 가능성에 관해 토론하기 시작했고, 결국 젊은 층들의 많은 호응 (Vote up)을 얻게 되며 공식적으로 시위를 집행하게 되었다.
현재 홍콩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국내 뿐 아니라 전세계의 지지다. LIHKG와 같이 주요 시위가 집행되는 플랫폼이 홍콩인들 위주로 사용되기 때문에 시위 관련 게시글이 올라오면 다른 사용자는 게시글을 영문으로 번역하여 레딧, 페이스북과 같은 글로벌 플랫폼에 공유하고, 홍콩 내외 외국인들에게 소식을 전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테크니들 인사이트
젊은 층으로 구성된 홍콩 시위대는 열정적이다. 이들의 홍콩에 대한 자부심, 민주화에 대한 진심과 간절함은 그 무엇보다 뜨겁다. 특히 필자는 지난 여름 홍콩 시위행진을 참여하였고, 거리의 많은 홍콩인들이 페이스북 라이브 영상과 LIHKG를 통해 실시간으로 소식을 접하는 모습을 보며 이를 더 실감할 수 있었다.
이제 홍콩의 주말은 시위가 있는 날과 없는 날로 나뉠 정도로 시위가 자주 일어난다. 주말마다 수십만 명의 홍콩 시위대가 거리로 행진하는 모습을 보며 온라인 플랫폼의 화력을 다시 한번 실감한다. 수십만 명의 홍콩인들을 한 장소로 모이게 할 플랫폼이 없었다면 이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소수의 시위대 리더들만이 주체가 되어 집행되는 시위가 아닌, 모든 이들이 LIHKG라는 플랫폼을 통해 차별 없이 목소리를 내고 의견이 반영되어 시위가 진행되는 부분이 홍콩의 민주화 운동을 위한 올바른 첫 걸음의 시작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지난달 홍콩 입법회 선거 후 민주파가 압도적 승리를 거두며 폭력 사태와 시위는 많이 가라앉은 상태다. 하지만 아직 홍콩 시민들의 요구가 완전히 수용되지 않은 상황인만큼 시위대는 언제든 거리로 나올 준비를 하고 있으며, 민주화를 향한 그들의 발걸음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젊은 홍콩인들이 어떤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활용하여 시위를 계획하고 난관을 풀어나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