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뱅크 주요 투자사 중 첫 실패 업체가 나왔다. 구글 벤처,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로부터 2억 4천만 달러 (약 2천 8백억원)의 투자를 받은 미국 스타트업 ‘Brandless (브랜드리스)’가 올해 초 폐업을 공식 선언했다.
2017년 창업 1년 만에 기업가치가 5천억원에 달했고 큰 주목을 받았던 만큼 이번 폐업은 많은 소비자들이 아쉬워 하고 있으며, 유통업계에 또 다른 이슈를 낳고 있다. Brandless는 현재 90%의 직원을 해고했고, 웹사이트는 이미 제품 리스트를 내리고 주문을 받지 않고 있다.
Brandless는 국내 이마트의 노브랜드나 코스트코의 Kirkland 제품과 비슷한 비즈니스 모델을 기반으로 시작한 스타트업이다. 생필품, 가공식품 등 300여개의 친환경, 무화학성분첨가 제품들을 제공하며 모든 제품을 3달러라는 균일가에 제공했다.
최근 세계적으로 환경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는데다 저렴한 가격과 심플하면서도 세련된 패키징으로 젊은 소비자층에게 큰 인기를 끌며 밀레니얼 세대의 P&G라 불리기도 했다.
멤버십 고객들에게 배송비 할인 뿐 아니라, 매 제품을 구매할 때마다 Feeding America에 한 끼니씩 전달하는 기부금의 두 배를 기부하는 혜택을 제공하며 초기 5만명에 달하는 소비자를 빠르게 확보했다.
Brandless가 시중에 판매되는 일반 제품과 차별된 점은 모든 제품이 PB제품 (자체제작)이라는 것이다. 로고, 패키징, 유통 마진, 광고 등 브랜드와 관련한 모든 거품을 배제하고 ‘가성비’ 즉 제품의 본연 속성과 가치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이다.
기존 미국 시장에 있던 친환경 커머스 기업이나 Amazon, Whole Foods와 비교되기도 하며, 더욱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구할 수 있고 구매를 기부와 연결하는 기회를 주는 일석 삼조의 혜택에 많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스타트업’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큰 주목과 기대를 받은 Brandless가 한순간에 폐업을 결정하게 된 이유 3 가지를 분석했다.
1. 다양한 제품과 소비자 타겟을 고려하지 않은 3달러 정찰제의 실수
기존 Brandless가 내놓은 3달러 균일가 정책은 획기적이었다. 친환경 소모품을 3달러에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은 소비자 입장에서 매우 저렴하게 느껴진다.
Brandless는 불필요한 중간 유통 과정을 줄여 비용을 절감했고, 이를 통해 다른 경쟁사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인 3달러에 대부분의 제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하지만 초기 100가지 제품만 판매하던 때와 다르게 300가지 이상의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게 되며, 3달러 정찰제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실제 Brandless의 비전에 따라 제작될 수 있는 제품은 매우 제한적이다. 어쩔 수 없이 Brandless는 몇 가지 제품 가격을 인상했고, 3달러 균일가로 판매하던 제품의 수가 줄게 되었다.
게다가 제품을 낱개로 구매하는 소비자라면 한 번에 한 개의 물건을 3달러에 구매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1인 가구 소비자층을 제외한 다른 소비자층을 타겟하기에 3달러는 꽤 비싸게 느껴진다.
특히 코스트코나 월마트 같은 대형마트를 통해 다량의 제품을 더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기 때문에 가족 단위를 이루는 소비자들 입장에선 Brandless는 데일리 제품을 구매하기에 조금 부담스러운 브랜드가 되었다.
2. 아마존, 월마트는 알고 있었지만 Brandless는 몰랐던 것 – 소모품은 수익 창출에 크게 기여하지 않는다
Brandless의 대부분 제품은 소모품 (consumables)이다. Brandless의 비전은 소비자들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소모품들을 브랜드 제품이 아니더라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화장지, 건전지, 샴푸, 식용유, 펜 등 소비자들이 일상에서 정기적으로 필요한 제품을 내놓아 소비자들이 편리하게 Brandless의 제품을 찾을 수 있도록 했지만 이는 잘못된 전략이었다.
아마존이나 월마트 같은 대형 기업들은 이미 소모품이 수익 창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Brandless로부터 크게 위협을 받지 않았다. 소비자는 소모품을 사기 위해 아마존 쇼핑을 하거나 월마트를 한 바퀴 돌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고가 제품을 구매하면서 주변에 보이는 소모품을 한두 개 집어갈 뿐이다. 아마존이나 월마트같은 대형업체들에게 소모품은 단지 고객을 끌어들이는 작은 미끼일 뿐, 그들의 주 수익원이 아니다. 단순 소모품만을 통해 두터운 소비자층을 확보하기엔 어렵다고 볼 수 있다.
3. 소비자의 선택은 제품 본질이 아닌 마케팅과 브랜딩이다
Brandless는 불필요한 브랜딩 거품을 없애고, 마케팅이나 광고 전략 없이 순수 제품의 본질만으로 소비자들과 소통하며 경쟁력을 선보이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초기에는 신박한 아이디어로 많은 소비자의 주목을 받았지만, 입소문만으로 제품을 알리는 데 한계가 있었고,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커머스 업체들이 즐비한 시장에서 광고 없이 두터운 소비자층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한계에 직면했다. 특히 Brandless가 스타트업이라는 점을 고려하였을 때 더 다양한 소비자층을 타겟하기 위해서 마케팅과 광고가 필수 요소였다는 점을 알게 된다.
게다가 ‘낮은 가격’외에 Brandless가 내놓을 수 있는 경쟁력이 없다는 점에서 브랜드는 소비자의 제품 구매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제품은 단순히 제품 자체의 본질만을 통해 판매될 수 없음을 증명하게 된 셈이다.
아마존의 AmazonBasics나 코스트코의 Kirkland 또한 결국 제품 자체가 아닌 아마존, 코스트코가 가지고 있는 브랜드의 후광을 입은 제품이라는 점에서 브랜드와 제품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알 수 있다.
테크니들 인사이트
소프트뱅크 투자를 받은 기업이 흔들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WeWork의 IPO 실패, 크고 작은 사건이 많았던 Uber, 소프트뱅크 비전펀드가 3억 7,500만 달러(약 4,400억원)를 투자했지만 최근 직원의 80%를 해고한 Zume Pizza까지, 여러 기업들이 소프트뱅크 투자 위상에 타격을 줬다.
이런 크고 작은 경험을 통해 지난해 소프트뱅크는 기업의 ‘성장’에 치중하던 투자 전략에서 ‘수익’에 중점을 두는 방향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마 Brandless와 같이 단순히 좋은 취지와 신박한 아이템을 가지고 있던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가 조심스러워질 것이다.
Fast Company로부터 가장 혁신적인 리테일 기업의 하나로 선정되었던 Brandless의 폐업은 제품 유통의 불필요함을 줄이고 저렴한 친환경 제품 유통을 늘리자는 좋은 취지가 있었기 때문에 더 아쉽게 느껴진다.
현실은 혹독하고 경쟁의 벽은 너무나 높아 Sustainability라는 비즈니스 모델만을 가지고 성장하는데 한계가 있다. 특히 Brandless같은 경우 3달러라는 낮은 가격과 노마케팅, 노브랜딩 전략 외에 시장에서 오래 살아 남을 수 있는 또 다른 무기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관련 기사 및 이미지 출처: Protocol, The Motley Fool, FinvsFin, CN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