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엄 벨이 알려준 ‘선출원주의’의 중요성

세계에서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은 누굴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도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Alexander Graham Bell)을 떠올릴 것이다. 스코틀랜드 태생인 벨은 1870년 캐나다로 이민을 간 후, 1872년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하였으며, 1873년에는 보스턴 대학에서 음성생리학 교수로 임용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게 된다.

청각 장애인들에게 말을 가르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은 1874년 그의 첫 번째 전신(telegraph)을 통한 음성 소통 장치를 발명하는 계기가 된다. 그로부터 약 2년 후인 1876년 2월 14일 오전, 벨은 대리인을 통하여 이 장치에 대한 특허출원서를 제출한다. ​​

그로부터 불과 2시간 후, 엘리사 그레이(Elisha Gray)는 벨과 정확히 같은 목적의 음성 소통 장치에 대한 특허출원서를 제출하게 되는데, 두 개의 동일한 특허출원이 같은 날 접수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두 명의 발명가는 서로의 발명품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었고, 그레이는 벨이 특허출원을 준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서둘러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특허출원을 준비하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

오늘날로부터 불과 150여 년 전인 1870년대 중반, 전신(telegraphy)은 비로소 세계적으로 대중화된 통신방법이 되었다. 당시에 전신은 목소리로 전달하는 것보다 전달할 수 있는 정보량이 적었고 전신이라는 방식에 익숙해야 소통이 가능하다는 단점도 있었다. 하지만 이 무렵 전보의 트래픽은 급격하게 증가하였으며 새로운 회선들이 설치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많은 지역에서는 늘어난 통신량을 감당하는 것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다.

따라서 당시 미국 최대의 전신회사였던 웨스턴 유니언(Western Union)은 최초로 단일 회선을 통해 복수의 통신을 동시에 전송할 수 있는 이른바 멀티플렉스 전신 시스템을 개발하는 사람에게 무려 100만 달러의 상금을 제공하기로 약속한다.​

당시에 벨과 그레이는 모두 이 과제에 도전하게 되는데, 둘은 매우 유사한 해결책을 발견하면서 이를 음성 통신에도 적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이에 대하여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게 된다. 벨은 새로운 콘셉트의 음성 전신(vocal telegraphy)에 집중한 반면, 그레이는 음성 전신 방식이 기술적으로는 훌륭할지는 몰라도 상업적인 측면에서 타당성이 적다고 판단하고 기존의 전신 방식에 집중하였다. 그레이는 기존의 전신 산업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통신 시스템의 가능성을 인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

새로운 유형의 통신시스템의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그레이뿐만이 아니었다. 벨은 특허를 등록한 해인 1876년 말 자신의 음성 전신 특허를 판매하고자 웨스턴 유니언에 구매의사를 확인하였으나, 웨스턴 유니언의 반응 역시 벨의 특허기술을 “과학적으로는 훌륭하나 미래가 불투명한 장난감” 정도로 여겼으며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결국 이듬해인 1877년, 벨은 자신이 직접 통신회사를 설립하게 되었고 이 회사는 오늘날 미국의 최대 통신사업자 중 하나인 AT&T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

그렇게 벨이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이야기가 끝나는 것 같지만, 사실 최초로 전화기를 발명한 사람이 누군지에 대한 부분은 최근까지도 이루어진 논쟁거리였다. 물론 벨이 전화기로 최초의 특허를 받은 것은 맞지만, 전화기에 대한 아이디어를 최초로 생각해 낸 발명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

이탈리아 이민자인 안토니오 메우치(Antonio Meucci)는 벨보다도 무려 25년이나 앞선 1849년, 말하는 전신기 또는 전화기의 디자인을 개발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1871년 그의 말하는 전신기에 대하여 임시 특허 출원을 하였으나 특허등록 비용 $250 (현재가치 기준 약 $5,500)을 마련하지 못하여 그 이후 정식 특허출원을 하지 못하고 임시 특허만 갱신을 하던 중 1874년, 그마저도 갱신비용 $10 (현재가치 기준 약 $236)을 마련하지 못하여 특허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전화기의 역사는 최초의 발명가가 아닌 최초의 특허출원인인 벨을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

안토니오 메우치 (Antonio Meucci)

약 20년 전인 2002년 6월 11일, 마침내 미국 하원에서 메우치의 전화기 발명에 대한 공헌과 업적을 인정하게 되는데, 메우치는 벨의 특허출원보다도 16년이 앞선 1860년, 류마티스 관절염으로 인하여 방에만 갇혀지내던 아내와 그의 집 1층 실험실에서 전화통신을 성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

위 사례를 통하여 다시금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아무리 세상에서 가장 먼저 무언가를 발명하였더라도, 이를 특허로써 보호받지 못한다면 이미 공개된 해당 기술에 대하여 발명가로서의 권리를 가지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 당시 메우치에게 특허를 등록할 수 있는 금전적 여유만 있었더라도 오늘날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는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표면적으로만 알고 지나간 역사 속에도 위와 같은 수많은 비하인드 스토리들이 숨어있으며, 똑같이 훌륭한 기술을 개발하였더라도 한 순간의 신속한 판단과 선택으로 누군가는 세상의 빛을 보며 이름을 알리지만 누군가는 사람들에게 기억되지 못하고 역사 뒷편으로 잊혀질 수 있다는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겠다.

테크니들 인사이트

대다수의 나라에서 선출원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특허를 출원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이 공개될 경우 앞으로 영원히 해당 기술에 대한 특허를 받지 못할 수도 있으므로 항상 주의해야 한다.  

특허를 출원하고 유지하는 비용이 적지는 않지만, 이를 포기할 경우의 기회손실은 훨씬 더 클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항상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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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캘리포니아) 양국의 변호사로서, 한국변호사로 근무하던 중 미국변호사 자격을 취득하고 미국으로 건너와 UCLA 로스쿨을 졸업했습니다. 현재는 주 로스앤젤레스 총영사관의 경제 자문위원 및 스타트업 자문변호사이자 한국변호사들이 주축이 된 스타트업 법률 지원단의 변호사로서 주로 한국의 스타트업들의 미국진출과 한-미 크로스보더 거래를 자문하고 있습니다. 프로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