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의 혈액으로 200가지가 넘는 검사를 하고 질병을 조기에 진단하여 의료 진단 산업 분야를 뒤흔들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실리콘 밸리 바이오테크 유니콘에서, 희대의 사기극으로 밝혀진 테라노스가 결국 폐업을 하게 된다는 소식이다. (테라노스 주주들에게 보낸 서신) 이 회사에 투자했던 투자자들과 비즈니스를 함께 했던 월그린은 투자금을 모두 잃게 되었으며, CEO였던 엘리자베스 홈즈와 COO 이자 홈즈의 남자친구였던 것으로 알려진 서니 발와니는 현재 범죄 혐의로 기소되어 재판을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에는 테라노스 스캔들을 최초로 특종 보도한 WSJ의 존 캐러루 기자가 자세한 취재 과정을 묶어 ‘Bad Blood’라는 책을 내서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었다. 이 책을 읽은 글렌 라이신 이라는 투자자가 자신의 감상평을 올렸었는데, 간단히 요약하자면 아래와 같다. (글렌의 원문: Lessons from Bad Blood)
1. In healthcare, gray hair and experience counts
– 헬스케어 분야를 혁신하려면 기술 개발에 더해 규제, 임상, 리엄버스 정책 등을 포괄한 전체 시스템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그러려면 해당 분야에서의 경험이 필요하다. Bad Blood 책에 나온 예를 들면, 마크 저커버그가 10살 때 아버지 컴퓨터로 집에서 독학으로 코딩을 시작하고 배워나갔지만, 의학은 이런 식으로 배울 수도 없고, 그렇게 해서 마스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2. You need to have investors who understand your business.
– 테라노스는 명성으로만 따지자면 보면 누구나 알만한 루퍼트 머독이나, 멕시코 통신 재벌 카를로스 슬림 등으로부터 투자를 받았으나, 투자자 중 누구도 헬스케어 분야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테라노스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는 것을 전혀 견제하지 못했다. (투자자에게서 받을 수 있는 것은 ‘돈’만이 아니다.)
3. Everyone needs to do their own due diligence.
– 다소 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테라노스에 투자했다가 돈을 잃은 투자자들, 월그린, 세이프웨이등을 동정할 필요는 없다. 왜냐면 그들은 투자자로서 해야할 최소한의 조사 (due diligence)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글에서도 투자를 검토했으나, 심사역들이 실제 제품을 테스트해보고 난 후 투자 철회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THE COMPANY RAISED $600 MILLION WITHOUT A SINGLE PUBLISHED PEER REVIEWED JOURNAL ARTICLE. (저널에 peer reviewed 논문을 하나도 안 낸 회사가 어찌 6천억원이나 투자를 받을 수 있나?)”
4. Take corporate governance seriously
– 스타트업에서도 기업 지배구조를 제대로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이사회의 기능이 중요한데, 테라노스 이사회 멤버들은 창업자이자 CEO인 홈즈를 거의 견제하지 못했다고 한다. 홈즈가 98%의 voting stock을 컨트롤 한데다 CFO도 해고해 버렸고, President이자 COO였던 서니 발와니가 남자 친구였음을 이사회에 알리지도 않았다고 한다.
5. Culture Matters
– 회사의 문화는 중요하다. (이 문화를 만들고 유지해가는 것 역시 창업자, CEO의 책임이다.)
6. There is no such thing as a short cut with respect to regulatory compliance.
– 메디컬 디바이스 관련 규제를 어떻게 슬쩍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면 메디컬 디바이스나 의학분야 관련 규제는 환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이걸 어물쩍 넘어가겠다는 말은 자신들의 제품을 사용할 고객들을 위험에 빠트리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7. You know you are right when someone attacks you personally.
– 당신이 누군가에게 비판적인 질문을 했을 때 상대방이 당신을 ‘개인적으로, 감정적으로’ 공격한다면, 당신 생각이 맞기 때문일 것이다. 존 캐리루 기자도 테라노스의 변호사가 자신이 쓴 기사를 WSJ에 싣지 못하게끔 집요하게 달려드는 것을 보고서 제대로 특종 물었다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고 한다.
테크니들 인사이트
개인적으로 테라노스 스캔들에 관심이 많아서 Bad Blood가 출판되자마자 읽어보았는데, 이 스캔들이 이제서야 외부에 밝혀졌다는 것이 놀라울 정도로 내부에는 오랫동안 쌓인 문제들이 많았다.
직원들에게 데이터를 조작하기를 강요하기도 하고, 바른 말은 하는 사람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해고를 하고 그것도 모자라 소송을 하는 등 우리가 그 동안 알고 있던 혁신적인 스타트업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생화학자였던 한 직원은 스트레스로 인해 자살을 하기도 했고, 내부 고발을 했던 직원은 할아버지이자 테라노스 이사회 멤버였던 조지 슐츠와 절연하고, 부모는 아들의 소송을 위해 수억원을 비용을 사용해야만 했다. 이 외에도 정말 충격적인 에피소드들이 많은데, 관심있으신 독자분들은 꼭 읽어보시길 권한다.
위에 글렌이 언급한 모든 점들이 테라노스가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짧은 기간 동안 거짓으로 여러명을 속이거나, 꽤 긴 시간 동안 소수를 속일 수는 있어도, 결국엔 다 들통나게 마련이다. 무엇보다 자신들이 개발했다는 기술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저 돈과 명성으로 쌓아올렸던 ‘테라노스’의 몰락은 그래서 당연하다고 본다.
관련 기사 및 이미지 출처 : WSJ